90년대 기술혁신정책 설명

기술혁신정책의 변화

본 절에서는 국내 경제성장 패러다임의 변화에 따라 기술혁신정책의 변천과정을 살펴보고 이를 통해 기술금융, 기술가치평가의 중요성을 도출하는 것을 복표로 한다. 기술혁신정책의 변천과정은 기술혁신역량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를 강화하기 시작한 ‘90년대부터 분석한다.

가. ‘90년대

‘90년대 들어 산업계의 기술혁신 활동은 보다 강화되기 시작하였다.

국내 경제는 문민정부 출범이후 ‘95년 국민소득 1만달러를 달성하였고, 세계화라는 화두 하에서 OECD에 가입하면서 선진국 진입을 목표로 하였다. 민간의 연구개발 투자는 외횐위기 이전까지 ’91~‘97년까지 연평균 26.3% 증가했으며 외환위기가 도래한 ’97년 국가연구비의 총 78%가 민간부문에서 투자되었고 연구원의 경우도 54%를 민간에서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크게 변화하였다. 확대일로의 민간부문 연구개발투자는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축소되기 시작했고, 연구개발투자가 축소되면서 기업연구소에서도 구조조정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에 따라 ‘90년대의 기술혁신정책 변화는 크게 3단계(전반, 중반, 후반)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구체적으로 ‘90년대 전반은 기술혁신이 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추진되었다. ‘90년대 전반은 개방화․자유화 및 업종전문화가 점차 추진되는 단계로 민간주도 경제체제 구축을 위해 특정업종에 대한 개입을 대부분 불식, 전반적인 제조업 경쟁력 강화와 중소기업의 육성에 중점이 되던 시기였다. 정책적으로 경제발전단계와 국제분업구조를 고려, 기술집약도가 높은 첨단 기술산업(정밀전자, 신소재 등 16개 업종)을 핵심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한 제도가 시행 되었다. 특히 ’89년에 법률화된 「중소기업의경영안정및구조조정촉진에관한특별조치법」에 따라 중소기업 육성시책을 강화하기 시작하였다. 구체적으로 ‘93년 신경제 5개년계획에서 정부는 산업정책의 최우선과제로 기술혁신을 설정하고 기술드라이브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 과학기술정책이 범부처적으로 확산되어 국가연구개발사업의 확대 및 국제화가 진전되기 시작하였다.

과학기술처(‘90년대 당시 과학기술부)의 특정연구개발사업은 국책연구개발사업, 선도기술 개발사업 등 대형 기술개발사업에 주력하였으며, 통상산업부(’90년대 당시 산업자원부)는 제1,2차 기계류․부품․소재산업화 5개년 계획과 제조업 경쟁력 강화대책의 일환으로 생산기술발전 5개년계획 추진하였다. 또한 정보통신부는 정보통신기술개발사업, 환경부는 환경기술개발사업, 동력자원부는 에너지절약 및 대체에너지 기술개발사업 등을 발굴․추진하였다.

‘90년대 중반은 WTO체제 출범(‘95년)에 대비한 기업의 국제경쟁력강화가 산업정책의 화두로 등장하고 이에 따라 ‘95년 「공업 및 에너지기술 기반조성에 관한 법률」제정에 따라 산업기술정책 패러다임이 전환함에 따라 업종전문화시책 추진 및 규제완화가 시행되었다.

WTO체제의 등장으로 정부의 보조금, 특혜환율의 제공 등에 의한 특정 산업에 대한 지원정책은 제한되고 기술정책은 일정한 한도 내에서 가능하게 됨에 따라 기술인력의 양성, 산․학․연 공동연구 기반 구축 등 기술하부구조 확충정책이 본격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하였다.

‘90년대 후반은 후반은 IMF 위기의 극복이 주요과제로 등장하였다. IMF 외환위기(97년) 극복을 위해 산업정책을 정부주도의 산업합리화정책에서 시장중심의 기업구조조정정책으로 전환하였다. 구체적으로 민간 자율경쟁촉진 및 인프라 개선, 산업경쟁력 강화와 산업구조 고도화를 위해 산업발전법 제정(99년)하였고, 이와 함께, CRC(기업구조조정전문회사) 도입(‘99년), 구조조정 관련제도 (양도차익, 배당소득 등에 비과세, 구조조정기업간 M&A 촉진을 위한 사모 M&A 펀드 도입 등)등을 보완하였다. 또한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기술중심의 벤처기업을 육성하기 위한 정책을 추진, IT 산업의 급성장과 맞물려 벤처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였다.

결국 ‘90년대는 국내의 기술정책의 중심축을 기술 및 혁신확산과 기술인프라 조성을 중심으로 한 국가혁신시스템 구축으로 전환이 주요 정책의 결과였다고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