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고 현상에 따른 경제 급성장의 영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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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말 우리 경제는 정부의 강력한 지원으로 육성되어온 중화학공업이 과잉 중복투자로 부실해지고, 선진국의 무역 규제, 수입개방 압력 등으로 수출환경이 악화되면서 경기가 침체되었다. 그리고 그간 누적되어온 만성적 인플레이션 압력과 부동산 투기, 물가 상승, 경제 부문간 심각한 불균형 등의 구조적인 문제가 드러나면서 경제 불안이 심화되었다.

1978년 이후 정부는 불황의 극복, 장기 성장기조 유지를 위해 민간주도형 경제체제로의 전환을 추진하였으나 제2차 석유파동의 충격 등으로 우리 경제는 극심한 침체국면에 진입하였다. 따라서 정부는 정책의 초점을 안정기조의 정착에 두고 재정과 금융의 긴축 운영, 부분적 수입자유화 조치, 토지거래 허가제 등을 실시하였다.

금융부문에도 시장경제 원리를 도입하여 금융기관의 경쟁력 강화 및 효율성 제고를 위한 금융산업의 구조 개편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1979년 제2차 석유파동에 따른 세계 경기의 침체 및 대통령 암살사건에 따른 정치사회적 불안이 이어지는 가운데 흉작에 따른 농산물 파동까지 발생하게 되었다.

1980년대 들어 지속된 선진국의 경기침체로 수출 부진에 시달리던 우리 경제는 1986년부터 시작된 미 달러화 약세, 글로벌 금리 인하, 국제유가 하락 등 ‘3低 호황’에 힘입어 국제수지가 개선되고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달성하게 된다. 재정적자 및 무역적자에 시달려 온 미국이 1985년 플라자합의를 통해 달러화의 평가절하(‘저달러’)를 용인하면서 발생한 ‘엔고’현상은 한국 상품의 가격경쟁력을 강화시켰다. 이는 수출증대, 무역수지와 경상수지의 흑자전환, 외채의 축소에 기여하였다.

제2차 오일쇼크 이후 경제를 부양하려는 각국의 금리인하 노력과 플라자합의에 따른 달러화 평가절하가 맞물리면서 국제금리의 하락기조(‘저금리’)가 이어졌고, 우리나라 외채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변동금리부 채무의 상환부담을 감소시켰다.

또한 1985년 12월 OPEC회원국들이 고정유가제를 폐지하고 시장점유율 확대정책을 취하면서 배럴당 약 30달러에 달하던 국제유가가 1986년 이후에는 10달러 대까지 하락(‘저유가’)하였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 상품의 생산비가 절감되고 가격경쟁력이 회복되어 무역수지 및 경상수지가 개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