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법에서의 유추와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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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법에서의 유추와 해석

 

Ⅰ. 서

유추는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용어다. 특히 인간은 사물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통해 지식을 넓혀 가는데, 이 또한 유추의 원리를 이용하는 것이다. 유추는 비교 대상 간에 본질적 요소를 함께 하는 유사성이 존재해야 적용할 수 있다. 가령 A 사건과 B 사건 간에 X라고 하는 관점에서 본질적 요소를 공통으로 지니고 있다는 것이 인정될 경우 A 사건에 적용되는 규범이 B 사건에도 유추 적용하거나, A 사건에 적용되는 해석을 B 사건에도 유추 적용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유추는 법률의 해석뿐만 아니라 계약의 해석과 관련해서도 훌륭한 수단이고, 해석을 넘어서 법률의 흠결을 보충하는 영역, 흠결보충영역에서도 탁월한 보충수단이다. 법학 전반에서 유추의 원리를 활용하는데, 구체적 법 영역에 따라 유추가 어떤 목적과 기능으로 활용되고, 어떠한 사안에 적용되는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이 논문에서는 민사판례를 중심으로 유추의 활용을 살펴본다.

 

Ⅱ. 계약의 해석과 유추

  1. 의의

먼저 계약 해석 일반에 관해 살펴본 후 유추가 계약의 해석에서 어떤 지위를 차지하고 어떤 임무 수행하는지 살펴본다.

 

계약은 청약과 승낙의 합치를 통해 성립하고, 계약 당사자들은 장래 계약관계가 종료될 때까지, 계약의 내용을 준수하겠다는 법규범을 스스로 창출한다. 이는 자기 결정과 자기 책임을 요소로 하는 사적 자치 원칙을 바탕에 둔 것으로 계약은 곧 사적 자치의 가장 효율적인 실현수단이 되는 것이다. 계약의 양태와 내용은 매우 다양하고, 그 전개와 변화의 가능성 내포하고 있다.

 

계약을 통해 규범을 창설한 당사자들은 자신들이 의욕한 목적을 달성하고자 계약에 대해 해석을 행하는 경우가 있다. 만일 계약의 내용에 대해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지게 된다면 이는 각자의 이익이 상충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고, 따라서 해석을 통해 계약을 통해 형성한 규범의 내용이 무엇인지 밝혀야 한다. 이는 곧 인간의 언어능력과 예견능력에는 한계가 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발생한다. 꼭 합의가 필요한 사항이지만 약정하는 것을 간과했다거나 약정 이후 약정 당시의 예상과 다른 문제가 나타나는 경우가 비일비재 한 것이다.

 

 

  1. 계약의 해석 일반

(1) 의의

계약의 해석방법으로 통상 해명적 해석과 보충적 해석을 든다. 해명적 해석이란 무언을 사용한 사람이 그 문언으로 의도한 바가 무엇인가를 밝히는 해석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의도하는바’는 곧 의사는, 표의자의 진정한 의사일 수도 있고 추정적 의사일 수도 있고, 혹자에 따라서는 가상적 의사일 수도 있다. 그런데, 계약의 해석은 크게 두 관점에서 나눌 수 있는바 하나는 표의자의 자기 결정권을 중시하는 관점이고, 다른 하나는 수령자의 신뢰를 보호하는 관점이다. 표의자의 자기결정권을 중시할 때 주로 행하는 해석은 자연적 해석으로 수령자의 신뢰보호를 우선할 때 행하는 해석은 객관적, 규범적 해석으로 분류하는 경향이 있다.

 

(2) 자연적 해석과 규범적 해석

자연적 해석이라 함은 외부로 표시된 문자적, 언어적 표현에 구속되지 않고 표의자의 실제의 의사, 즉, 내심의 효과의사인 진의에 따라 계약을 해석하는 방식이다. 이를 중시하는 전형적인 해석 원칙이 바로 오표시 무해의 원칙이다. 그런데, 계약에서 다의적 용어를 사용할 때 해석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바, 이때 자연적 해석만을 강조하는 태도는 사적 자치의 원칙, 즉, 자기 결정과 자기 책임의 원리에 따라 그 계약 상대방 입장에선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표의자의 시각 뿐만 아니라, 수령자의 시각도 중요한데, 특히 당사자의 진의가 합치되지 않고, 표시된 바의 의미도 명확하지 않을 때, 수령자의 신뢰보호는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특히 이 경우, “계약 내용이 불명확할 때는 그 계약을 작성한 자에게 불이익하게 해석해야 한다”는 작성자 불이익 원칙이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작성자 불이익 원칙은 유추가 계약영역에서의 소극적인 역할을 잘 보여주는 예이다. 이 원칙은 약관과 관련하여 자주 언급되는데, 유럽계약법원칙(PECL) 제5:103조와 우리 약관규제법 제5조 제2항에서도 이를 규정하고 있다. 이 원칙은 불명확한 표현이 적시된 약관을 일방적으로 상대방에게 제시하는 자는 그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 타당하다고 보고, 결과적으로 수령자의 시각으로 표의자가 형성한 문언을 해석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PECL에서 표의자가 속한 직업영역의 협회에서 사전에 작성해 놓은 표준계약서를 사용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가령 보험회사가 사용한 약관 중에 “홍수로 인한 손해는 보험에서 제외 된다”는 면책조항이 있을 때, 상수도관이 파열로 물바다가 되어 발생한 손해”를 두고서 보험회사가 위 상수도 파열로 인한 손해도 홍수에 포섭된다며 면책을 주장하면, 작성자 불이익의 원칙에 의해, 보험회사의 면책주장은 배제된다. 이는 곧 보험회사가 면책조항의 유추 적용을 시도하는 것인데, 법원의 입장에선 이러한 유추 적용의 여부를 심사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고 따라서 PECL를 통해 작성자에게 유리한 유추 적용을 배척할 근거를 명확하게 확립하여 놓은 것이다.

 

그런데, 양 당사자 모두 약관을 사용하는 자들이거나 항시 정형적인 약관 거래를 하는 자들인 경우에는 작성자 불이익의 원칙을 원용하긴 어렵다. 이 경우, 약관조항을 통하여 양 당사자들이 민법의 일반 법리에서 벗어나 임의 규범을 창설한 것이라면, 그 민법의 임의규정의 입법 취지 및 주된 보호 대상이 누구인가에 따라 당해 약관조항을 해석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대법원 1996.12.6.선고 96다35774의 원심판결인 수원지방법원의 1996.7.10.선고 96나3644의 판시 내용을 살펴보면, 원고와 법정대위권자인 피고 사이의 신용보증계약 약관에서 피고의 책임이 면책되는 경우가 추상적이고 불명확할 때, 법원은 법정 대위권자를 보호하려는 민법 제485조의 입법취지에 맞추어 당해 약관을 법정 대위권자에게 유리하게 해석해야 한다고 본다. 즉, 이 경우 법원은 작성자 불이익의 원칙이 아니라, 당해 약관의 목적과 내용에 비추어 판단한 것이다.

 

다음으로 규범적 해석은 내심의 효과의사와 표시행위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 의사표시의 수령자인 상대방의 시각에서 표시행위의 객관적 의미에 따라 계약을 해석하는 것을 말한다. 의사표시의 상대방이 문언의 뜻과 더불어 제반 상황을 고려할 때, 그와 같은 수령자의 입장에서 기대되는 적절한 주의를 기울이면 알 수 있는 내용이 해석의 기준이 된다.

 

 

(3) 보충적 해석과 유추

보충적 해석은 자연적 해석이나 규범적 해석으로 법률행위의 해석을 명확히 할 수 없는 사안에서, 특히 계약에 흠결 내지 공백이 존재하여, 통상의 해석에 의해 이를 메울 수 없을 때, 보충적으로 적용되는 해석기법이다. 이때 계약의 흠결은 당사자들이 당해 계약을 체결한 목적 내지 계획에 비추어 볼 때 쟁점이 된 사안에 관해 규율이 꼭 필요하다고 보임에도 체결 당시 이를 예상하지 못하여 계약이 불완전한 경우를 의미한다.

 

필자는 전형계약의 흠결 시에는 임의 법규가 우선 적용되어야 하고, 비전형 계약의 경우에는 보충적 해석이 적용된다고 보고 보충적 해석을 자연적 해석과 규범적 해석 방법보다 유추에 더 근접한 것이라고 본다.

 

그런데 보충적 해석이 법률행위에 대한 해석인지, 객관적인 법적용인지에 관해선 논란이 있다. 통설은 보충적 해석이 양 당사자의 실제 의사를 확정하는 것은 아니고 법률행위 당시 및 보충적 해석을 하는 당시의 사정, 신의성실의 원칙과 거래 관행에 의하여 인정되는 양 당사자의 가상적 의사를 확정하는 것이다. 다만 가상적 의사는 당사자가 정한 법률행위의 내용상 양자가 법률행위의 틈과 이에 관한 규율의 필요를 알았더라면 정하였을 조항의 내용을 확정하는 것이므로 내심적 효과의사의 연장으로 보아 사적 자치의 원칙과 조화를 이룬다고 본다.

 

그러나 필자의 경우는 계약의 해석과 흠결보충 영역의 경계가 매우 유동적이라고 보고, 이 경계는 유추를 통해 가늠할 수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필자는 보충적 해석의 실체를 당사자가 의도하지 않았던 내용을 법관법규범적으로 확정하기 위해 당사자가 의도하였을 것이라고 여겨지는 내용을 실제 의도했던 내용으로 보기 때문이다. 즉, 계약 체결의 전체적인 목적에 비추어 계약에 흠결된 부분에 그 계약의 속성을 유추하여 확정하는 것을 보충적 해석이라고 하는 것이다. 다만, 순수한 법률행위의 해석문제로 취급하는 것은 반대하는데 왜냐하면, 사실상 합의가 없음에도 이른바 묵시적 합의라는 명분을 만들어 당사자의 의도를 존중한다는 것은 사실상 합의가 없음에도 있었던 것으로 의제하는 것이기에 이는 법률이나 어떤 객관적인 법규범에 의해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 법적용자의 해석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므로 사적 자치원칙과 정신을 훼손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Ⅲ. 법률의 해석과 유추의 역할

법률해석의 한계는 ‘법률 문언의 가능한 어의적 한계’이다. 이러한 해석의 영역에서도 유추가 활용될 수 있는데, 다만 유추해석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도 해석의 영역을 벗어난 경우도 있다. 이는 해석과 흠결보충의 경계가 유동적이고 후자가 전자의 연속선상에 있다는 점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민법에서 각종 준용 규정들을 살펴보면, 유추해석을 해야 하는 전형적인 예들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사실상 준용은 ‘어의’의 틀 내에 머문다는 의미에서 유추-해석의 예라고 할 수 있으나, 유추-적용과 다를 바가 없다.

 

 

Ⅳ. 법률의 흠결보충방법으로서의 유추

법률의 흠결보충 방법으로 자주 활용되는 것이 유추 적용이다. 그런데, 이 경우 해석에서의 유추와는 달리 유추 적용은 법률의 흠을 보전하는 방법이기에 해석의 한계를 벗어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예를 들어 민법 제575조 1항은 ‘매매의 목적물이 지상권, 지역권, 전세권, 질권 또는 유치권의 목적이 된 경우에 매수인이 이를 알지 못한 때는 이로 인하여 계약의 목적이 달성할 수 없는 경우에 한하여 매수인은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 기타의 경우에는 손해배상만을 청구할 수 있다’라고 명시하고 있는데, 이 조항 어디에도 ‘대항력 있는 임차권’에 관한 언급은 없지만, 동조항을 유추 적용 할 수 있음에는 이의가 없다. 또한, 실익이 크지 않지만 유추 적용이 가능한 경우로는 민법 제639조 1항을 들 수 있다.

  1. 사안의 구조적 유사성에 기한 유추 적용

(1) 명의도용과 대리의 구조

타인 명의를 도용하여 이루어진 법률관계는 대리의 구조와 유사하다. 뚜렷한 현명이 없으며 그 타인이 자신의 명의가 도용되는 사실 자체를 모르기 때문에 명의사용에 대한 어떤 권능도 부여한 바가 없는 경우가 보통이지만, 명의인과 행위자 및 상대방이라는 삼각관계가 전형적인 대리의 구조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특히 행위자가 명의인으로 사칭할 경우 상대방과 행위자 사이에는 ‘명의인’을 계약당사자로 하는 의사의 합치가 있는 경우가 많다. 이는 곧 명의인과 상대방이 계약의 당사자로 해석되는 것이다. 이것도 대리인이 대리하지만, 계약은 본인과 상대방 간에 성립하는 경우와 구조적으로 동일하므로 대리의 법리를 유추 적용 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법률행위 일반이론에 부합할 것이다. 이는 무권 대리의 경우처럼 대리인 스스로가 책임을 지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본인에게 행위자가 한 행위의 법률효과를 귀속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1) 표현대리의 유추 적용을 인정한 대법원 1993.2.23.선고 92다52436 판결

민법 제126조는 “대리인이 그 권한 외의 법률행위를 한 경우에 제삼자가 그 권한이 있다고 믿을 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는 때는 본인은 그 행위에 대하여 책임이 있다.”고 하여 표현대리를 규정하고 있다. 이는 기본대리권이 있는 대리인이 그 권한의 범위를 넘어서 대리행위를 하는 것을 전제한다. 종래 대법원은 민법 제126조의 표현대리는 대리인이 본인을 위한다는 의사를 명시적으로 혹은 묵시적으로 표시하거나 대리의사를 가지고 권한 외의 행위를 하는 경우에 성립하고, 사술을 써서 위와 같은 대리행위의 표시를 하지 아니하고 단지 본인의 성명을 모용 하여 자기가 마치 본인인 것처럼 기망하여 본인 명의로 직접 법률행위를 한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위 법조 소정의 표현대리는 성립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런데 본 판례에서는 이전 대법 판례에서 언급한 “특별한 사정”이 존재하는 것을 전제로 제126조의 유추 적용을 긍정한 사건이다.

 

사실관계를 살펴보면, 피고가 아파트를 소유하였다가 타 지역으로 이사를 가면서 자신의 형(소외1)에게 인장을 맡기고 위 아파트 임대 등 일체의 관리를 위임했다. 이에 원고는 피고 본인으로 행세하는 소외1로부터 위 아파트를 임차하고 임차기간을 갱신하다가, 후일 위 아파트를 매수 하였다. 위 소외1은 임대차 계약뿐만 아니라, 매매계약 당시에도 피고의 인장을 지참하여 피고의 이름으로 계약을 체결하고 그 대금 등도 피고의 이름으로 수령했다. 이때, 법원은 아파트 관리의 범위를 넘어서, 임차인에게 매도하는 법률행위를 한 것에 대해 표현대리 법리를 유추 적용 하여 본인에 대하여 그 효력이 미친다고 볼 수 있는 것이고 원고는 위 매매계약 당시 위 소외1에게 위 아파트를 처분할 권한이 있다고 믿을 만한 정당한 사유가 있었다고 할 것이다.

이 사건에서, 현명이 있는 경우와 현명이 없는 경우, 즉 본인을 사칭한 경우를 같이 볼 수 있을지에 대하여, 동조의 입법목적이 권리 외관에 대한 상대방의 신뢰보호를 지향하는 바, 두 경우를 같게 볼 수 있다고 할 것이다. 또한, 표현대리의 성립효과를 피고인, 본인에게 귀속시키는 것이 정당한지에 대해서는 본인과 대리인은 형제관계로, 친밀한 만큼 일체의 아파트 관리를 위임한 상태에서 아파트 관리와 계약서의 확인 등을 소홀히 한 채 장기간 방치함으로써 상대방의 신뢰를 야기하는 외관을 창출 유지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2) 표현대리의 유추 적용을 인정하지 않은 대법2002.6.28.선고 2001다49814판결

처가 타인을 시켜 남편을 사칭시킨 사건으로, 사실관계를 간략히 보자면 다음과 같다. 소외1은 이 사건 피고인 남편 몰래 피고 소유의 부동산을 원고인 은행에 담보로 제공하고 금원을 대출받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피고의 신분증에서 사진을 떼어내고 그 자리에 소외2의 사진을 붙인 후 주민등록증 사본을 원고의 담당직원에 제출하는 방법으로 소외2가 피고로 가장하여 이 사건 각 차용금증서 및 어음거래약정서 등에 피고의 인장을 날인함으로써 이를 각 위조하여 대출을 받았다. 이에 원심은 본인을 모용한 사람에게 본인을 대리할 기본대리권이 있었고 상대방으로서는 위 모용자가 본인 자신으로서 본인의 권한을 행사하는 것으로 믿은 데 정당한 사유가 있었던 사정을 의미한다고 전제하고서 피고를 모용한 소외2가 피고를 대리할 어떠한 기본대리권이 있다는 점에 관하여 아무런 주장, 입증이 없다고 판단하여 원고의 주장을 배척했고, 대법원 또한 민법 제126조 소정의 표현대리의 유추 적용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고 하여 상고인인 원고의 주장을 배척했다.

 

필자는 위 판결에서 본인인 피고는 어떠한 기본대리권도 수여한 바가 없고, 소외1인 처가 평소에 보관하고 있던 남편의 인장을 사용하였을 뿐 일상가사대리권도 인정하지 않았다고 본다. 왜냐하면, 부동산을 담보로 제공하는 행위가 일상가사의 범위에 해당하는 것은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즉, 본인으로서는 상대방이 신뢰할 만한 외관을 창출, 유지한 바가 없으므로 제126조의 입법목적에 비추어 볼 때 이사건에서의 유추 적용의 토대는 미역하여 위 판결에 대해서도 납득할만하다고 본다.

 

 

(2) 유형론에 근접한 유추 적용의 예

유추 적용 여부에 관한 논란이 있으나 필자는 유추 적용이 타당하다고 생각하는 판결을 살피는데, 여기서 유형론에서 볼 수 있는 것과 유사한 사고방식을 마주할 수 있다고 한다. 유형론적 사고란 유형 a, b를 당해 유형을 구성하는 본질적 요소로 판단할 수 있음을 전제하고 난 뒤, A에서 구성표지들 a, b, c, d, e, f가 있고 이 유형 A로 편속을 검토할 대상인 사안 B에는 c, d, e, f, g, h, i가 있고 사안 C에는 a, b, k, l, m이 있는 경우 이 경우 공통된 표지가 훨씬 많은 사안 B보다 공통된 표지가 적은 C가 유형 A에 편속 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먼저 대판 19877.7. 86다카1004, 이른바 명성그룹 사건은 한국상업은행 혜화동 지점의 지점장대리 K는 대리권을 남용하여 명성그룹 회장 김철호의 사업자금을 불법으로 조성해주었다. 약 4년 3개월에 걸쳐 1066억 원이 사채자금으로 조성됐다. 이 판결은 여러 가지 쟁점을 일일이 검토한 후 민법 제107조 1항 단서의 유추 적용이라는 이론적 근거에 의지하여 대리인의 배임적 대리행위를 판단했다. 나아가 사채자금을 제공하고 이자를 받았던 원고에게 악의나 중과실은 인정하지 않으면서 원고가 피고은행에 대하여 사용자배상책임을 추궁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으며, 결론에 이르러 손해의 공평한 분담이라는 관점을 강조했다.

 

이 사건을 분석하기 위해 필자는 먼저 비진의의사표시제도가 갖는 의미를 살핀다. 제107조 제1항 본문에 따라 비진의 의사표시는 원칙적으로 유효하다. 다만 본 조항의 단서를 따르면 상대방이 표의자의 의사표시가 비진의의사표시라는 것을 알 거나 알 수 있었을 경우에는 무효이다. 그런데 필자는 위 조항 단서의 경우는 당연한 조문이 아니라고 본다. 이 조문은 상대방이 표의자가 유보한 진의를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때는 표시의식을 무효로 하고 있는데, 이는 마치 비진의 의사 표의자를 보호하는듯한 입법 태도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진의의사표시를 한 자는 상대방을 기망하려는 의도가 다분히 있는 것이고 상대방이 이를 우연한 기회에 알았다고 하더라도, 표의자가 더 보호받아야 한다는 가치평가가 당연해 보이지 않는다고 필자는 주장한다. 107조 1항의 입법목적과 학설상의 많은 논란이 있지만, 필자의 경우 제107조 1항의 단서를 의사주의에 따른 것으로 이해하고, 의사와 표시가 실제로 불일치하는 경우로서 표의자의 진의를 존중하여 표시된 바의 효과를 부정하는 것으로, 이에는 상대방의 신뢰를 보호할 필요가 없다고 보는 태도가 깔린 것이라고 한다.

 

명성그룹판결을 분석해보면 먼저 일반적으로 비진의표시에 해당되기 위해서는 ‘유보된 진의가 표시상의 법 효과의사와 관련’이 있어야 한다. 피고 은행의 대리인은 지점장대리로서 포괄적 대리권을 부여받은 자이다. 대리권의 범위 내에서 배임적 대리행위를 했는데, 이러한 배임대리 행위도 원칙적으로 본인에 대해 효력이 있다. 하지만 예외적으로 본인에게 그 법률행위의 효과를 귀속시키는 것이 합당치 않은 경우 그 효력을 부인하여 본인을 보호할 필요가 있는데, 이때 거래안전보호에 해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효력을 부인해야 한다. 필자는 결론적으로 이 사안에 제107조 제1항이 직접 적용되기 어렵다고 보고, 제107조 제1항 단서의 유추 적용이 가능한지 살펴본다.

 

필자는 제107조 제1항이 직접 적용될 수는 없지만, 비진의 의사표시와 같게 취급할만한 주요한 표지들이 사안에 존재하는지를 따지는데, 위 경우 배임적 의사를 상대방이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때는 민법 제107조 제1항 단서의 취지를 유추하여 대리행위의 효력을 부정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견해를 인용한다. 필자는 배임적 의사를 비진의 의사표시에서의 ‘유보된 진의’에 대응 하는 것으로 이해하며 ‘유보된 진의와 표시된 바가 다른 점’과 ‘유보된 진의가 표시상의 효과의사와 관련된 점’이 비진의 의사표시의 구성요소와 같은 표지들이고, ‘효과귀속의사는 하자 없는 정상적 의사표시인 점’과 ‘나아가 비진의표시가 되려면 대리K가 이 표시된 바대로 상대방이 받아들이기를 의욕 하였다고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다른표지로 보았다고 한다. 결국, 판례는 상술한 ‘같은’ 표지들이 제107조 제1항 단서의 유추 적용 여부 판단에 중요한 기준으로 활용했다고 필자는 주장한다.

 

 

  1. 사안 구조적 유사성의 결여로 유추 적용이 인정될 수 없는 경우

대리인이 스스로 대리점을 열고자 제3자와 대리점 계약을 체결하려 할 때, 제3자가 영업보증금의 지급이행에 대한 담보를 요구하여 대리인이 본인을 대리하여 보증계약을 체결하는 경우, 즉 대리인이 본인을 대리하여 자신과 거래관계에 있는 거래 상대방인 제3자에 대하여 대리인을 보증하는 경우 외관상으로는 제3자, 대리인, 본인이라는 삼각관계가 형성되어 있어 민법 제124조가 전제하는 사안구조와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필자는 이 경우 사안 구조적 유사성이 없기에 124조를 직접적용하거나 유추 적용 할 수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제124조는 자기계약과 쌍방대리를 금지하고 있는데, 위 사안의 구조에서는 대리인이 본인과의 거래에서 그 직접적인 거래 상대방인 것도 아니고, 대리인이 자신의 거래상대방인 제3자의 대리인이 아니라 본인을 대리하고 있을 뿐이다. 즉, 자기계약 또는 쌍방대리에서 볼 수 있는 구조적 특징을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표현대리와 과실상계에 관한 대판 94다24985와 95다49554에서는 “표현대리가 성립하는 경우에 그 본인은 표현대리행위에 의하여 전적인 책임을 져야하고, 상대방에게 과실이 있더라도 과실상계의 법리를 유추 적용하여 본인의 책임을 경감할 수 없다.”고 판시하고 있는데, 이는 채무불이행책임이나 불법행위책임 등 손해배상법에서 일반적으로 널리 인정되는 과실상계의 법리가 표현대리행위에 대해서는 유추 적용 될 수 없다고 보는 것이다. 필자는 그 이유를 법원이 과실 책임과 권리외관책임의 구별을 포기할 수 없는 본질적 차이점으로 인식했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또, 책임을 지는 자의 책임을 귀속시킬 비난 사유가 질적으로 다르다는 점이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작용했다고 본다.

 

 

  1. 어떤 법 영역 전체를 유추 적용하는 경우

대법원 2001.11.9.선고 2001다44291 판결을 살펴본다. 원심 사실관계를 보면, 부산광역시 동래구는 피고의 임야1을 협의 취득하면서 손실 보상금으로 금 3억 원 가량을 지급하고, 위 임야1의 모 토지인 피고 명의의 임야2의 소유권이전등기를 보면 임야2의 19/25는 피고에게 속하고, 나머지 6/25는 원고에게 속한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리고 피고가 동래구로부터 받은 임야1에 관한 손실 보상금 중 6/25에 해당하는 약 7천만원 상당은 원고가 지급받아야 할 금원이라 볼 것이므로 결국 피고는 위 임야1의 등기명의자임을 토대로 법률상 원인 없이 위 금원 상당의 이득을 얻었고 원고는 원인 무효인 피고 명의의 등기로 인하여 위 금원 상당의 손해를 입었다고 보아 피고는 원고에게 위 금원 상당을 부당이득으로 반환을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대법원은 무권리자가 타인의 권리를 자기 이름으로 또는 자기의 권리로 처분한 경우에, 권리자는 후일 이를 추인함으로써 그 처분행위를 인정할 수 있고 이러한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권리자 본인에게 위 처분행위의 효력이 발생함은 사적자치의 원칙에 비추어 당연하다고 하고, 추인은 명시적 방법과 묵시적 방법 모두로 가능하며 그 의사표시는 무권대리인이나 그 상대방 어느 쪽에 하여도 무방하다고 밝혔다. 그리고 대법원은 이 사건에서 원고는 자신의 지분에 대한 동래구의 협의취득이 유효함을 전제로 피고가 수령한 이 사건 임야에 대한 손실보상금 중 원고의 지분에 상당한 금원의 반환을 구한 것이 곧 원고가 무권리자인 피고의 위 처분행위를 묵시적으로 추인한 것이라고 봄이 상당하고 이에 동래구는 원고 지분에 대해서도 소유권을 적법하게 취득했다고 본다.

 

필자에 따르면 79다2151 이래 판례는 무권대리의 추인과 무권리자의 처분의 추인을 ‘같게’ 취급하는데, 위 판결은 이와 다른 ‘사적 자치의 당연한 결과’라는 판시를 하였다. 이는 법적인 구조가 아니라, 소유권이전등기의 유효 여부를 중시하는 태도인 것이다. 필자에 따르면, 무권처분의 추인에 관하여 명문 규정이 없는 현행법에서 무권대리의 추인과 같이 취급할 수 있다고 본다. 이는 유추 적용을 의미하는데, 상대방의 신뢰보호라는 관점에서 법적인 구조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하는 시각이 있는 듯하다. 즉, 상대방의 신뢰보호라는 본질적 관점에서 현명을 통해 무권대리인으로 등장했는지, 자기 이름으로 행위 했는지는 이를 달리 취급할 필요가 없다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신뢰보호의 세부적인 양상에서 차이점이 드러날 경우 필요한 변경을 가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 다른 본질적 요소가 무엇인지 중요하다고 밝힌다. 또한, 법적인 구조는 우추적용의 타당성 여부를 검토하는 130조 이하의 각 규정에서 적절한 본질적 요소를 같이하는 사안 구조적 유사성이 존재하는지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현행법상 무권리자의 처분에 대한 추인을 규정하고 있는 명문 규정이 없는 이상, 사적 자치의 원리로부터 곧 장 무권리자의 처분의 추인을 도출하는 것을 필자는 더 고민해보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어떤 구체적인 법 효과를 도출할 때, 추상적 법원리보다 구체화한 실정법규나 관습법 또는 판례 규범으로부터 그 법률요건과 법률효과를 추론하는 것이 보다 더 타당하다고 본다. 따라서 위 판결에서 사적자치의 원칙을 적용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고 더욱 구체적인 근거를 찾아야 한다고 본다.

 

필자는 이에, 무권대리의 추인구조와 무권리자의 처분의 추인구조를 비교하며, 무권대리에 관한 규정들이 무권리자의 처분의 경우에 어떠한 변경을 가하여 적용될 수 있는지와 어떤 조항은 본질적 요소를 달리 하기에 유추 적용 될 수 없는지를 살펴본다.

 

먼저 무권대리에 관한 규정 제132조는 “추인 또는 거절의 의사표시는 상대방에 대하여 하지 아니하면 그 상대방에 대항하지 못한다. 그러나 상대방이 그 사실을 안 때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경우 무권처분의 추인에서 본인은 구 추인을 무권처분자 또는 상대방, 나아가 전득자에게 하여도 무방하기 때문에 무권처분의 추인을 조문의 문언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무권처분의 추인의 의미는 권리의 보유자가 자유롭게 거래의 외관을 유효하게 함으로써 권리의 법적 상태를 변경시키는 것이고 이에는 제3자가 그 여부에 대하여 알고 있었는가는 중요치 않은데, 위 사건에서는 원고가 무권처분자에 대하여 부당이득금의 반환을 청구함으로써 묵시적으로 추인하여 법률관계가 적법한 것으로 확정된 것이기 때문이다. 즉, 이는 무권대리의 추인의 경우와는 상황이 다른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차이점은 제130조 이하의 유추 적용의 의미 속에 함축되어 있다고 한다. 즉, 어떤 일개 법조항이 아니라 어떤 법 영역을 규율하는 ‘일련’의 법규가 다른 법 영역에 어떠한 범위에서 어떠한 모습으로 유추 적용될 수 있는지를 검토하는 것은 보다 면밀한 성찰이 필요하고, 무권리자의 처분의 추인문제를 무권 대리의 법리를 유추하여 해결 하려는 견해는 양 사안 간에 본질을 같이하는 부분에 대해서만 유추 적용을 허용하자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고 필자는 주장한다.

 

 

  1. 유추 적용을 먼저 검토해야 할 사안에서 이를 당연한 전제로 하여 판단한 사례

대판 1993.6.8.선고 93다14998을 보면, 이 사건은 채무자S가 원고인 제3자 X로부터 대여받아 보관하고 있는 물건(금형)임을 알면서도 채무자로부터 담보의 의미로 제공받아 이를 보관, (피고 Y의)은닉 행위가 제3자에 대하여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한 사례이다. 또한, 채무의 변제로 타인의 물건을 인도한 채무자는 다시 유효한 변제를 하지 아니하면 그 물건의 반환을 청구하지 못한다는 민법 제463조는 채무자만이 그 물건의 반환을 청구할 수 없다는 것에 불과할 뿐 채무자가 아닌 다른 권리자(원고인 제3자 X)까지 그 물건의 반환을 청구할 수 없다는 취지는 아니라고 판시하였다. 즉, 제463조의 적용을 부인한 것이다.

 

이 사안에서 상고심은 S가 Y에게 “금형들을 담보로 제공”한 것을 명백히 판시하였고 그렇다면 이는 변제목적이므로 X의 물건인 금형을 인도한 것이 아니라, 채무의 담보목적으로 인도한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도 상고심은 채무자의 행위가 변제목적인지, 담보목적인지를 판단하지 않은 채 곧바로 제463조의 문언 순서상으로도 나중에 있는 채무자 해당성만을 검토한 후 Y에게는 위 조항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시하였다. 이를 두고 필자는 결국 제463조가 채무의 변제목적으로 타인 물건을 인도한 경우뿐만 아니라 채무의 담보목적으로 타인물건을 인도한 경우에도 유추 적용 될 수 있음을 전제로 한 것이라 선해한 것이라고 본다. 이는 곧, 변제와는 분명히 다른 담보목적의 타인물건 인도에도 이 조문이 적용 가능함을 당연한 전제로 한 것으로 여긴 셈이다. 그런데 이 조문의 유추 적용에 대한 판단은 당해 조문의 향후 적용범위를 법 형성을 통해 확정해나감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인데 이 판결은 이러한 유추 적용 여부에 대한 구체적 판단은 전혀하지 않은 채 바로 채무자 요건의 검토만 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필자는 결과적으로 어차피 제463조가 적용될 수 없기에, 복잡한 유추 적용 여부를 따지기보다 간명한 문언 해석으로 결말을 내는 것이 재판부 입장에선 낫다고 판단하여 이렇게 한 것은 아닌지 추측한다. 그러나 필자는 ‘채무의 변제로’라는 문언은 바로 그 뒤의 제464조 내지 제486조까지 모두 연관이 되기에 그 해석의 내용과 범위는 반드시 확인하고 넘어가야 할 과제라고 주장한다.

 

 

Ⅴ. 결론

필자는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유추의 적용형태를 보다 구체적으로 고찰했고 법학방법론에서 유추만큼 법해석과 법형성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 찾기 어렵다고 밝힌다. 비교대상이 되는 어떤 양 사안에서 비교 관점을 기준으로 볼 때 본질적 요소를 같이하는 사안 구조적 유사성이 존재할 때 유추의 토대가 주어진다. 이러한 구체적 비교과정을 유사성테스트에 기한 유추라고 부르건,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라는 법명제건 명칭상의 큰 차이는 없다고 본다. 다만 유추라는 것은 궁극적으로 전체 법체계의 조화로운 운용을 위한 하나의 수단이기에 그 이용목적에 따라 적절히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힌다.